음악교육신문

과거와 미래가 하나 되는 시간 지금, 세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하다. 첼리스트 한동연은 20세기 첼로 시리즈 두 번째 시간을 통해 과거 20세기 구 소련 체제의 통제와 억압 속에서도 힘겹게 꽃피울 수 있었던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면서 현재의 아픔을 성찰하며,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9월 25일(일) 오후 3시 영산아트홀 에서 N. Roslavets <Sonata for Violoncello and Piano No. 1>, D. Shostakovich <Sonata for Violoncello and Piano in d-minor Op. 40>, S. Prokofiev <Sonata for Violoncello and Piano in C-Major Op. 119>를 통해 고통의 시대 속에서 그려낸 그들의 찰나의 예술을 무대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작년에 20세기 첼로 시리즈 첫 공연을 한 것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두 번째 시리즈를 맞았네요. 멋진 계절인 가을에 연주할 수 있게 되어서 더없이 감사하고 기쁩니다.

두 번째 시리즈는 모두 러시아 레퍼토리로 구성되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두 번째 시리즈를 어떤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할까 고민하던 중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구소련 체제에서는 정부가 예술을 어떻게 통제하고 탄압했는지, 그리고 작곡가들은 그 속에서 어떤 음악들을 창작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오히려 이 시기에 청중들에게 그 부분에 대해 해설을 하면서 연주를 들려드리면, 훨씬 더 깊이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러시아 작품들로 선곡하게 되었습니다. 세 작곡가 모두 시대의 고통을 음악 속에 표현하고 반영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로슬라베츠는 세 작곡가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인 탄압을 많이 받은 비운의 작곡가입니다. 30년간 러시아 작곡가 명부에 이름도 오르지 못했고, 당연히 그의 작품은 연주될 수도 없었죠.

20세기 러시아 첼로 소나타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의 작품과 함께 잊힐 뻔했던 그의 음악을 청중에게 소개하게 되어 의미가 더 깊게 느껴집니다. 

무겁고 거칠고 단순하지만, 힘이 있는 그의 작품이 연주를 준비하며 제 마음을 많이 울렸습니다. 이어지는 쇼스타코비치 <첼로 소나타 Op. 40>은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지만은 않은 억압된 표현이 이중적으로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모닉스를 글리산도 주법으로 연주하는 현대적인 기법들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특히 2악장에서 그의 음악적 특성이 리듬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마지막 곡인 프로코피에프 작품도 굉장히 힘든 상황 속에서 만든 곡으로 유명한데요. 프로코피에프는 아내가 스파이로 몰려 큰 고초를 겪었고, 특히 <첼로 소나타 Op. 119>는 그가 죽기 전, 병상에 누워서 정해진 시간에만 작곡이 허락된 상황 속에서 만든 곡이에요. 깊은 슬픔과 절망이 느껴지면서도 프로코피에프 특유의 경쾌함, 그리고 유머와 우아미의 어우러짐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스탈린 독재와 암울한 정치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런 예술이 꽃 필 수 있었을까요?

체제에 동조하는 곡을 만들어야 하는 억압된 사회였기에 작곡가는 더욱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악적 표현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 같아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토해낸 그들의 음악은 러시아의 역사 속에 면면히 흘러온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있는 문학, 건축, 미술 등 다른 분야의 예술과 연결되어 더 넓은 바다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전쟁에 휩싸인 이 시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일까요?

현재 이화여대 배일환 교수님께서 주관이 되어서 전쟁의 빠른 종식을 촉구하는 의미로 러시아대사관 근처 중구 정동 길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평일 낮에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인디애나 대학 동문으로 구성된 첼로 앙상블 연주를 두 번 했는데요. 이런 공연이야말로 진정 음악가가 사회를 향해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 의미 있는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고통, 슬픔, 상실 등 인생의 어두움을 녹여낸 음악은 청중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요?

전쟁 같은 비극을 겪은 시기에 탈고된 곡들은 나름의 비장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작품을 분석하며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기에 음악은 들리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들 역시 상황에 따라 작곡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음악을 해석할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슬픔을 담은 곡이 모두에게 슬픈 감정을 전하지는 않는 것처럼요. 결국 작곡가와 청중, 그 중간에 위치한 연주자, 이 세 사람은 각자의 눈과 마음으로 작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의 역할은 작곡가의 작품 바탕 위에 저만의 해석을 덧붙여 청중이 각자의 해석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음악회가 어떤 시간이길 바라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어느덧 귀국한지도 12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연주와 교육은 저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8월에는 가천대 학생 첼로 앙상블을 함께 연주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해온 삶에 대한 감사와 행복함, 기쁨을 누릴 수 있었어요. 올 가을 학기부터는 숙명여대와 이화여대에서 새롭게 강의를 하게 되어서 더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이화여대는 모교여서 교육자로서 후배들을 만난다는 것이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네요.

그리고 독주자뿐만 아니라 실내악 주자로서도 좋은 무대를 자주 갖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올해 결성해서 첫 연주를 한 ‘트리오 르 쏭’은 음악적으로 뜻이 맞는 인디애나 음대에서 함께 수학한 친구들이 만나 결성했습니다. 우리 말로 ‘그 소리’라는 의미인데, 내년에는 더 멋진 실내악을 청중에게 선사하고 싶습니다. 음악이라는 진실한 친구와 앞으로 더욱 성장하면서 청중에게 음악 안에 담긴 다양한 감정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라고 기대합니다. 이번 음악회가 평화를 기원하고 러시아 음악을 통해 자유가 없었던 시대를 돌아보며 현재의 우리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글 국지연(음악 칼럼니스트, 전 객석 편집장)